책읽긴했는데_기억이안나

강제 수용소의 삶의 이야기 - 생존자

DiKiCHi 2017. 3. 18. 00:30

<생존자 - 테렌스 데 프레>

 

 

 

 

[책 소개]
<생존자>는 나치 그리고 소련의 강제수용소에서 생존한 사람들의 관한 이야기입니다. 

책 내용이 마음에 크게 와 닿았는데요. 아마도 얼마전에 읽은 <더 로드>의 처참한 상황과 수용소 상황이 비슷하다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타버린 지구에서 살아남은 아버지와 아들 또한 죽음의 공포 속에서 느꼈던 두려움과 희망이 <생존자>에서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제 수용소에서도 '불을 운반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생존자
국내도서
저자 : 테렌스 데 프레(Terrence Des Pres) / 차미례역
출판 : 서해문집 201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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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직접 인터뷰한 작가는 다양한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있게 파고든 책입니다.
(마치 제 생각을 얘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동진, 김중혁 님이 하시는 이야기랍니다:)

 

질문하는 책들
생존자

 

<생존자>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을 들어보실까요?

이동진:  수용소의 그 엄혹하고도 참담한 환경이 오늘날 우리에게 인류의 특질을 정말 잘 보여준다는 거죠. 가장 원초적인 모습으로 말이에요. 과연 인류에게 어떤 희망을 찾을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매우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생존자> 마지막에 핵심적인 내용이 있는데요.
신참 수용자가 들어오고 공포스러운 첫 밤에 고참 수용자가 하는 말입니다.

내가 자네한테 우리들이 겪은 일을 말해주는 것은 자네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고 힘을 내게 하기 위해서야..

책을 읽어보시면 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수용소 고참이 이런 말을 했는지 느낌이 옵니다.

 


[존엄성의 자각]
<생존자> '3장 배설물의 공격' 에피소드입니다. 충격적인데요...
수많은 사람들이 수용소로 이송하는데 기차에 화장실이 없는 겁니다. 며칠 동안 이동하는데 처음에는 숨어서 용변을 보지만 며칠이 지나면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소련에서는 서로의 몸에 토하게 했다고도 합니다. 또한  벨젠 베르겐 수용소의 경우 여성 수용자가 3만 2000명인데 화장실이 하나였다고 하죠.

왜 이렇게 열악한 환경으로 밀어 넣은 걸 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의 존엄성 말살입니다. 수용소에 수감되는 순간 자신의 배설물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환경에서 스스로가 더럽다는 인식을 가질 수밖에 없고 자기혐오를 느끼게 됩니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존엄을 포기하게 만들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게 하도록, 정신을 황폐화하려는 목적으로 나치가 그렇게 한 거죠...
수용자들을 더 낮은 등급의 사람으로 만들어 죽이는 사람들의 죄책감을 덜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개를 죽이기가 쉽고, 개보다는 쥐나 개구리를 죽이는 게 쉬우며, 벌레 같은 것을 죽이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즉 문제는 시선, 눈동자이다.

정말 충격적이지 않나요? 저는 이 에피소드가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스타쉽 트루퍼스>를 보면 혐오스러운 벌레 모양의 외계인이 죽는 장면을 보면서 관객들은 반감이나 죄책감이 전혀 안 드는 이유도 마찬가지인 거죠. 우리도 나치와 같은 시선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요?

씻는 문제도 심각했다고 하는데요. '몸을 씻지 않는 사람부터 죽었다' 아침에 아무 맛도 없는 묽은 커피가 배급되면 그것을 두어 모금 마시고 나머지는 세수하는데 썼다고 합니다. 씻고 청결하게 한다는 것이 저들의 의도대로 내가 짐승이 되지 않겠다는 일종의 자기 존엄성이 아닐까요?

 

 

 

[저항과 증언]
강제 수용소에서도 조직적인 저항도 있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철문에 "ARBEIT MACHT FREI" (노동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고 쓰여있는데요. 'ARBEIT' 'B'를 보면 보통 쓰는 것과 달리 아래 반원이 작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 저항의 뜻이었다는 거죠.

아우슈비츠
아우슈비츠

또한 생존자들에게 증언하고자 하는 욕망은 그들이 살아남게 하는 동력이기도 했습니다.

경고의 외침이야말로 이타 주의의 으뜸가는 표본
 

 

 

[생존력]

<생존자>의 하나의 핵심은, '인간의 사회성이 이런 생존자들을 살게 만들었다'일 거예요. 
강제 수용소에 들어가면 이 세상의 거대한 악과 맞서겠다는 강한 신념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삶을 부여받은 인간으로서 타고난 생명력 자체가 사람들을 살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이라는 게 결국 죽음을 향해 하루하루 걸어가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죽음이 예비된 수용소에 들어가게 되면 오히려 죽음이 아니라 삶을 생각한다는 역설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입니다.

<더 로드>가 전해주는 이야기가 <생존자>와 같은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신념을 지키며 죽어가는 모습과 아우슈비츠의 수감자들이 최소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모습이 곁칩니다. 
거대한 악과 맞서겠다는 강한 신념보다 삶을 부여받은 인간으로 타고난 생명력 자체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수감자들이 살아가게 만드는 것 또한 같지요. 그리고 아들에게 불을 운반하라며, 희망을 놓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선배 수감자의 조언과 같습니다. 

한 소녀가 죽은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

우리들은 그곳으로 달려가서 아직 채 파묻지도 않은 발가벗은 시체들이 산처럼 쌓인 커다란 네모진 구덩이를 보았어. 우리가 아는 사람들도 많았고, 엄마도 거기서 찾았어. 온통 피퉁성이였어. 아기는 거기 없었어. 그리고 내 약혼자 헤네코, 내가 목숨보다 사랑했던 그도 거기 있었단다.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어. 내 마음이 죽어버렸을 뿐이야. 무슨 얘긴지 알겠니? 그들이 내일 다시 와서 내 아버지를 죽여도 난 까딱도 안 할 거야 울지도 않을 거야. 아버지를 위해서는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할 거야. 그들이 나를 죽여줬으면 좋겠어. 이제부터 나는 유태인 금지구역으로 아무 데나 막 걸어 다닐 테야. 그들에게 붙잡히고 싶어. 나는 죽었으면 좋겠어. 그래도 난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클래인.
 

 

 

[죽음의 공포와 생의 찬가]
수용소에서는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망이라고 말하는데 수용소에서 성욕이 사라졌다고 생존자들이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복잡한 기능이 빠지고 최소한의 기능으로 오직 생존만을 위한 상태가 된다는 겁니다.

에스키모들에게는 '훌륭한'이라는 단어가 필요 없어. 훌륭한 고래가 없듯 훌륭한 사냥꾼도 없고, 훌륭한 선인장이 없듯 훌륭한 인간도 없어. 모든 존재의 목표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지 훌륭하게 존재할 필요는 없어.

인간은 누구나 죽음의 공포와 싸울 수밖에 없죠.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방식으로 내세웠던 것들 중 하나가 '삶이라는 게 사실 별게 아니야, 하찮은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강제수용소의 생존자들은 "문명이 강요해온 고정관념, 즉 생이란 가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만 죽음의 공포를 없앨 수 있다는 그릇된 고정관념을 극복한 최초의 문명인들"인 거죠.

아우슈비츠가 준 교훈이 있다면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극악할 수 있는가와 인간이 생물학적인 본능만으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는가입니다.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들이 가슴이 아팠습니다.
특히 저는 수감자들에게 감정이입이 되기보단 나치들에게 감정이 이입이 더 많이 되었는데요. '오물을 뒤집어 쓴 사람들을 나는 어떻게 대할까?' 저도 마찬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피해자가 되고 싶지도 않지만 가해자 또한 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런 비극이 없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좀 차분히 차분히, 조용히 조용히 글을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