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차가운 날이었다. 고된 행군은 끝났고, 쉬는 밤이 찾아왔다. 매우 피곤했다. 골짜기 샘에서부터 시작된 바람은 돌고 돌아, 옆 줄기와 만나고 휘어져서 거대한 홍수처럼 주둔지를 덮쳤다. 모든 부대원들은 추위와 싸우며 흐트러짐 없이 잠을 지켰다. 하얀 눈꽃이 야영텐트를 조금씩 덮어오고 있을 때, 형준이는 혼자 조용히 일어나 있었다. 24인용 야영 텐트 안에는 난로 옆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조심히 의자에 앉은 형준이는 난로로 얼굴을 내밀었지만 난로의 온기는 이미 눈꽃으로 덮인 지 오래이다. 형준이에겐 마지막 혹한기다. 하지만 전역에 대한 기대감보단 걱정이 앞섰다. 입대하기 전 아버지의 사업은 큰 위기를 맞았지만 아버지는 "괜찮다" 하셨고, 어머니의 기침은 계속되었다. 당장 복학은 꿈도 못 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