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학위를 딴 직후 박사과정생은 취업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감 앞에 서게 됩니다.
사실, 학위를 마치기 전까지 지도교수님이라는 큰 흐름에 자연스럽게 흘러갔다면, 졸업하니 강을 벗어나 뭍으로 올라온 느낌입니다. 황무지에 선 느낌이라고 할까요. 날 도와줄 사람 하나 없더군요.
날 도와줄 사람 하나 없더군요.
취업전선으로 뛰어들어보니 자괴감이 듭니다. 수년간 공부했던 것이 쓸모없게 느껴집니다.
"잘 나가는 전공, 회사에서 선호하는 전공을 선택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후회가 몰려옵니다.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미래를 준비하지 않은 자신이 싫어지기도 합니다.
기초학문을 연구한 저는 전공에 맞는 회사를 고른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 포기하게 됩니다. 회사라는 생태계를 모르니 일단 전공이 아니다 싶으면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면접을 보게 되더라도 프레젠테이션을 4-5명 앞에서 하게 되는데 이건 또 다른 디팬스 과정 같았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취업했다고 좋았을까요? 3개월은 "나 곧 짤릴 것 같은데? 하는 거 없는데 월급을 왜 주지. 곧 잘릴 것 같은데"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나 곧 짤릴 것 같은데? 하는 것 없는데 월급을 왜 주지. 곧 잘릴 것 같은데.
회사에서는 전문가를 원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사원이었습니다.
이제 곧 4개월이 되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4개월간의 회고록 같은 글을 쓰는 이유는 회사에 졸업하고 취업한 다른 박사님이 회사에 들어왔는데 나랑 똑같은 두려움과 걱정을 봤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느낀 점에 대해 써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전공과 무관한 분야 선택
저는 분자 생물학을 전공했습니다. 기초 연구라 임상적인 의미를 갖는 연구는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연구가 잘된다면 더 많이 쓰이겠지만 아직 갈길이 멀죠.
반면, 회사는 임상적으로, 사람에게 활용할 수 있는 분야를 연구하게 됩니다. 줄기세포, 신경, 면역학 등등 회사가 좋아하는 연구 분야가 있는 듯합니다. 기초 분야를 전공한 저는 '과연 날 받아 줄 곳이 있을까?' 늘 고민했습니다.
한숨만 나왔습니다.
제가 크게 오해한 부분은 바로 <박사는 전문가로서 그동안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업무에 바로 활용해야 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력서를 쓸 수 있는 곳이 매우 한정적이었습니다. 갈 곳이 없었습니다.
"박사를 뽑았는데 신입사원처럼 배운다면 굳이 박사를 왜 뽑겠어?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면 그동안 연구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일까?" 이런 생각에 회사를 고른다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졸업은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죠.
어느 날 회사 경력이 많은 박사님이 말씀해주셨습니다.
"전공이 달라도 다 이력서를 넣어봐라. 거기 대표나 실무자는 전공만 따지는 게 아니라서 필요한 포지션과 맞으면 전공이 아니더라도 뽑는다"라고 말해줬습니다.
"전공이 달라도 다 이력서를 넣어봐라. 거기 대표나 실무자는 전공만 따지는 게 아니라서 필요한 포지션과 맞으면 전공이 아니더라도 뽑는다"
전공분야로 갈 회사를 찾기도 어렵고 간다고 해도 연봉이 낮았습니다. 해보지는 않았지만 예전부터 NGS (Next-generation sequencing)에 관심이 있어서 그와 관련된 회사를 찾아서 쭉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 그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전혀 해본적 없는 유전체학, NGS, 그곳에 제 자리가 있을 줄 몰랐습니다.
제게 충고해주신 박사님 말씀이 맞았습니다.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저는 논문을 썼습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암 환자의 변이를 분석하는 내용이었죠. 잘 모르는 내용이라 어려웠지만 결국 해냈습니다. 그리고 이게 회사에서 나를 뽑은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NGS 실험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실험을 디자인하고 의미를 찾는 것이 제가 할 일이죠. 그리고 의사들을 만나고 다닙니다. 꼭 전공분야가 아니더라도, 회사에서는 할 일이 많습니다.
박사과정을 했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익힐 준비가 된 사람들의 타이틀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회사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을 찾는 곳은 소수겠지만 그래도 자신에게 맞는 곳은 있습니다. 도전하시면 됩니다.
2. 회사 선택
대기업? 벤처기업? 어디를 선택하든 상관없는 것 같아요. 전들 알까요?
저는 벤처를 다니지만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일단 내용이 재미있습니다.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 제가 하는 일이 미래에는 굉장히 발전 가능성이 크고 환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임상의들과 대화하고 대표님과 대화하면서 배우는 것이 많아서 즐겁습니다.
다른 회사는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벤처라도 본받을만한 대표님이 있고 하는 일이 즐거우면 어디인들 안 좋겠습니까? 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봉급이 높아봐야 봉급쟁이입니다. 벤처는 한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기대감, 그 점이 가장 좋습니다.
이것 또한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3.업무
보통 박사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실험을 진행하죠. 그래서 그런지 실험을 하지 않으면 노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 동안 실험을 해도 눈치껏 배웁니다. 뭔가 대단한 일을 맡을 줄 알았는데 하는 일이 없습니다.
박사는 실험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실험은 학사, 석사 졸업생이 대부분 합니다. 어쨌든 다시 처음부터 돌아서 새롭게 배웁니다. 그냥 신입사원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다만, 스스로 배우고 모르는 것을 찾아서 해결할 줄 아는 똑똑한 신입사원입니다.
스스로 배우고 모르는 것을 찾아서 해결할 줄 아는 똑똑한 신입사원
몇 개월이면 회사가 하는 연구나 업무를 따라잡을 수 있습니다. 초반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걱정했던 것도 몇 개월 지나면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몇개월 지나면 회사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일들을 맡아서 일을 진행하게 됩니다. 물론 다 처음이고 어떻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동료가 있고 선배님들이 있으니 물어보며 준비하면 못할 일은 아닙니다.
제 경우는 첫 한 두 달은 주로 논문을 읽었습니다. 정말 하는 일 없이 논문만 읽었습니다. 그래서 곧 잘릴 줄 알았죠. 그 시간을 통해 빠르게 회사가 하는 프로젝트에 내용을 빠르게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논문을 하나 쓰고 나서 회사가 하는 일이 무엇이지 알 수 있었습니다. 생각하는 것보다 금방 됩니다.
박사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 생각하면 습득한 지식을 활용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연구방향을 잡거나 외부사람과 토의를 하고, 과제, 특허 등 연구와 관련된 행정업무를 하게 됩니다. 그러니깐 실험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논문과 다양한 지식을 빨리 습득하는 게 업무의 시작이고 지식을 활용하는 게 업무의 완성이라고 생각됩니다.
4. 박사라는 특권
사실 학위를 하면서 박사학위가 대단한 타이틀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돌아봐도 전문가 같지도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회사에서 논문을 쓰면서 알게 됩니다.
논문 쓸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사람이 박사라는 것을요.
좋은 논문이 아니더라도 논문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능력입니다. 학사, 석사 졸업생도 논문은 읽을 수 있겠지만 논문을 작성하는 것은 박사입니다. 그리고 논문을 읽고 활용할 수 있는 것도 박사입니다. 학사, 석사는 특히 회사에서는 논문을 읽을 일도 많이 없고 활용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박사는 논문을 읽고 쓰는 것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하나라도 아는 척을 할 수 있습니다.
회사 생활이 반복적인 업무를 하더라도 특별한 기회가 있지 않는 이상 일상적인 업무를 반복하게 되지만 박사는 늘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쫓아가야 하죠. 새로운 지식을 늘 접하는 것이 박사로써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전공 외에는 아는 것이 없다는 것에 자괴감을 느끼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남들과 다른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리고 결국 회사도 이런 이유에서 박사를 뽑습니다.
박사학위는 했지만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는 분들이 있다면 힘내시기를 바라는 마음에 몇 자 적었습니다.
박사학위를 했다는 것은 어느 분 야를 가도 새로 배울 수 있고, 적응할 수 있다는 자격증과 같습니다. 면접에서도 다 잘할 수 있다고 말하셔도 됩니다. 이미 박사학위로 그것을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졸업하고 취업을 생각하시는 박사분들을 응원합니다.
21.08.13 업데이트 내용
안녕하세요. 그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처음 느꼈던 어려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셨습니다.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처음 두려움이 사라질 무렵, 이제는 새로운 업무로 이직을 해서 새로운 업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난 어딜 가도 실적을 만들어 낼 수 있어!"라고 자신 있게 도전했지만 전혀 해보지 않은 일을 시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처음 직장에 했을 때와 같은 두려움과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 버텨볼 생각입니다. 새로운 전문가가 되야죠.
어쨌든 이렇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제 전공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과학자라는 직업이 참으로 이상하더군요.
최고의 전문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IT, 디자이너와 같이 자기의 기술로만으로 먹고살기가 어렵더라고요.
과학자, 연구원 등은 어느 기관(기업, 연구소, 대학)에 속해야만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실험기기나 논문을 쓸 때 반드시 기관이 필요하죠.
하지만 자신이 그동안 쌓은 연구 노하우나 강의 등으로도 충분히 능력이 있지만 그런 시장(?), 플랫폼이 없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형태로 과학자들의 전문성을 이용해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프리랜서 연구원"이라는 생소한 개념을 만들어봤습니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실험실 친구가 결혼하고 난 후 취업하지 않았다가 다시 일을 시작하려니 일할 자리가 마땅하지 않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였습니다. 박사학위까지 한 친구가 갈 곳이 없다니요? 경력단절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특히 여성 경우는 결혼 임신과 육아 때문에 직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시 일터로 돌아가고 싶어도 다시 시작하기에 큰 어려움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전문인력이 쉬다니요? 너무 큰 손실입니다.
남녀를 불문하고 박사학위를 했지만 보통 회사원이랑 다를 바가 없습니다. 직장에서 오래근 무한 연구원, 박사인력은 똑같이 은퇴하면 닭을 튀겨야 합니다. 그동안의 노하우와 전문지식을 발휘할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학위 과정과 직장, 연구소에서 했던 업무는 전문지식이고 전문 기술입니다. 머지않아 이런 기술로 직장에 속하지 않아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 등장할 겁니다.
싸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1시간 동안 전문가에게 컨설팅받아도 최소 20-100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인데, 프리랜서 활동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입니다.
단순한 업무부터 기술과 노하우 전수부터, 시니어 전문가의 컨설팅까지.
최고의 과학자의 전문 능력을 나눔으로써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일단은 얼마나 많은 분들이 이런 서비스를 원하는지 조사하고자 웹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혹시 이런 서비스에 관심이 있다면 이메일을 적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메일 주소만 수집하여 얼마나 원하는 사람이 많은지 파악만 할 것입니다. 수요조사입니다.
절대 마케팅용으로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이곳에 오셔서 내용도 읽어보시고,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블로그>
2021.08.25 - [혼자 말하는/취미활동] - [SciLancer] 프리랜서 연구원이 되자
https://chaegoner.wixsite.com/scilanc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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