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춥다_따뜻한돈이불이 필요해

이직... 결정했습니다

DiKiCHi 2021. 1. 26. 00:57

2년 5개월간 근무한 사랑하는 회사를 이제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유는 제가 월급쟁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막 성장하는 초기에 입사한 저는 아쉽게도 스톡옵션을 받을 기회를 놓쳤습니다.

상장 직전에 우리 사주를 준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설마 주겠지. 그동안 한 게 있는데'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안주더라구요.

 

당연하게 우리 사주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 나름에 억울함이 있습니다. 입사 한 달이 늦었다는 이유로 다 나눠준 오천 주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한 게 없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상장을 위해 논문이나 특허 실적이 중요한 만큼 회사에서 처음으로 논문을 두 편을 냈고, 특허출원도 2건을 만들었고 상장심사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억울함도 최근에야 생각한 것 들입니다.  그전에는 일이 재미있었고 성과를 만들어내는 일이 좋았습니다.

 

회사가 상장되었지만 전혀 즐겁지 않았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자랑스러웠던 회사가 잘되었지만 '이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라며 외면해야만 했습니다.

친구나 친척들이 연락이 와서 "너희 회사 상장되었다면서 축하한다"말해도 저는 "저는 뭐 아무것도 없어요" 멋쩍게 넘어가야 했습니다.

무관한 일로 치부해야만 속이서 올라오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같이 일했던 박사님이 지금 자기가 있는 회사에 와서 같이 일하면 좋겠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수개월 동안 말씀하셨지만 번번이 거절했습니다. 사실 지금 회사에 만족했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그 박사님의 제안을 제대로 듣고자 한번 만나자고 했습니다.

만나서 다른 업무적인 이야기는 모르겠고, 거기 대표님이 성과에 대한 보상이 확실하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면접을 봤고, 이직 사실을 연구소장님과 대표님에게 알렸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대표님이지만 3주 동안 3번 면담을 한 결과는 매우 실망스럽습니다. 

 

첫 번째 면담 : 처음 이직 소식을 접한 대표님은 이야기를 하자고 하시면서 왜 이직을 결정했는지 물어봤습니다.

차마 '주식 안 줘서 삐졌다'는 말은 못 했고, "이직하려는 곳이 대우가 더 좋아서 결정하게 되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채 박사가 그동안 잘했고, 앞으로 조금만 더 노력하면 결과가 쏟아질 것 같은데. 그리고 그동안 상장을 준비하다 보니 채 박사처럼 애매한 시기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주식을 못 챙겨줬다. 이번에 스톡옵션을 부여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이직으로 인한 연봉 인상은 스톡옵션을 통해서 보상이 가능할 것 같다. 경영총괄과 이야기해서 보상안에 대해서 논의해서 알려주겠다"하셨습니다. 덧붙여 여러 좋은 말씀과 창업을 하고 싶어 하는 걸 아셔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스핀오프로 해서 회사를 해보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두 번째 면담 : "일주일 동안 생각해봤냐" 대표님이 물으셨습니다. "이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생각했지만 결정을 못했습니다. 대신 지금 회사에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라고 말했고, 앞으로 하고 싶은 연구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대화를 하면서 보상안에 대해서 언제쯤 이야기하시려나 보고 있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포스닥이 왜 포스닥을 하느냐, 친구들 잘 나갈 때 돈도 적도 힘들지만 마치고 나면 그 친구들 3년이면 따라잡고 더 빨리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지금 채 박사가 잘 배우고 전문가가 되면 연봉은 따라오는 것이다."그러면서 "작년에 눈에 띄는 실적이 없는 것 같다. 일주일 동안 하고 싶은 연구계획을 세우고 3개월 동안 결과를 보자."라고 말씀하시는데 저는 기겁했습니다. 

'실적이 없다고?' 

'논문이랑 특허는 실적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그리고 내가 실적이 없으면 우리 연구소에 실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있나?'

그동안 한 것들에 대해 보상은커녕 인정받지도 못한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우면서도 화가 났습니다. 

첫 번째 면담 이후 일주일 동안 이직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한 가지 결론을 얻은 것은 "날 인정해줄 수 있는 곳으로 가자"였습니다.

 

어디로 가든 잘될 수도 안될 수도 있습니다.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직을 선택하든 말든 결과를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명확히 아는 것은 '어딜 가서 든 무엇을 하든 저는 성과를 만들어 낼 자신감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제가 있고 싶은 곳은 <성과를 인정해주는 곳>입니다. 그곳이 지금 회사이든, 다른 회사이든 상관은 없습니다.

 

세 번째 면담 : 이직을 통보하고 대표님을 요리조리 피하고 다녔지만, 결국은 걸렸습니다. 대표님이 이야기를 하자고 하셨고 마지못해 대화를 나눴습니다. 역시나 좋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30대는 불확실한 시기이지만 장기적인 목표와 3년간의 단기적인 목표를 잡고 나아가다가 방황은 할 수 있지만 장기적인 목표가 있으면 금방 돌아올 수 있다. 어떤 일을 하든 전문성은 남아야 한다. 지금까지 해온 큰 흐름에서 전문성을 쌓아야 나중에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런 말씀들을 해줬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대표님을 존경합니다.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실 때가 많거든요.

그리고 대표님이 한 가지 제안을 하셨습니다. "미국지사에서 근무해보는 건 어떻겠냐? 미국에서 일하면 연구와 비즈니스적인 업무를 맡게 되면 나중에 사업을 하든 스핀오프를 하든 큰 도움이 될 거다"라고 하셨습니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크게 혹했을 것 같습니다. 자식을 생각하면 미국에서 생활해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직은 2주도 안 남았고, 미국의 집이나 차량을 지원 안 해주면 월급이 올라도 적자라는 말을 들어서 포기했습니다. 좀 더 명확한 제안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아마 이런 내용은 마음속에 비밀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책도 주셨습니다. "셀트리오니즘" 매우 재미있게 봤습니다. 그리고 그 책을 통해 대표님이 하고 싶은 말씀도 알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책 앞 내용이 인상적이었고, 아마 대표님은 책 뒤쪽 내용이 인상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우린 생각이 너무 달랐습니다. 

 

세 번에 면담을 통해 확실 알 수 있었습니다.

1. 경영총괄에게 금전적인, 스톡옵션 등 보상안은 까여서 제시를 할 수 없다는 것

2. 그래도 날 잡고 싶어 한다는 것

3. 하지만 이직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것


아마 나중에 이직을 후회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회사가 싫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고, 좀 더 도전적인 곳으로 가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으로 이직을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이 맞을 것인지 아닌지는 많은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봉 따라가는 삶을 살고 싶지 않습니다. 주는 만큼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많은 일에 성과를 만들고 인정받아 연봉 인상보다 더 많은 보상을 받고 싶습니다. 돈을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방점은 <인정>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