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춥다_따뜻한돈이불이 필요해 19

이직... 결정했습니다

2년 5개월간 근무한 사랑하는 회사를 이제 그만두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유는 제가 월급쟁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막 성장하는 초기에 입사한 저는 아쉽게도 스톡옵션을 받을 기회를 놓쳤습니다. 상장 직전에 우리 사주를 준다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설마 주겠지. 그동안 한 게 있는데'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안주더라구요. 당연하게 우리 사주를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저 나름에 억울함이 있습니다. 입사 한 달이 늦었다는 이유로 다 나눠준 오천 주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렇다고 한 게 없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상장을 위해 논문이나 특허 실적이 중요한 만큼 회사에서 처음으로 논문을 두 편을 냈고, 특허출원도 2건을 만들었고 상장심사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억울함도 최근에야 생각..

결혼 5년차, 결혼에 대한 고찰.

결혼을 한 입장에서 미혼의 친구들에게 결혼은 추천할만한 것인가? 아마 신혼 초였다면 "당장해라. 너무 좋다. 강추 강추. 이 좋은걸 왜 안 하냐?" 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2명의 아빠가 되었고, 즐겁기만 한 신혼이 지나면서 현실적인 문제들이 다가오면서 결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 질문에 지금 다시 답을 하자면 '좋고 싫고는 모르겠고 내 동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수다나 떨자" 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는 즐거움, 든든함은 기본적으로 좋은 감정입니다. 하지만 이 감정은 종종 사라져 안 보일 때가 많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눈앞에 닥친 현실적인 문제, 예를 들어, 육아를 하면 이런 감정은 어디로 숨어버립니다. 육아의 고생이 그 빈자리를 메꾸기도 합니다. ..

박사학위 논문심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나의 진로는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지난 4년간 동안 생각해본 적 없던 이야기를 어제 하루에 깊이 생각해봤습니다. 뜬금없이 왜 이런 생각을 했을 까요? 바로, 어제가 ‘학위논문심사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한참 심사기간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밤잠을 설치고 있겠죠. 논문심사 시간은 지난 시간 동안 연구한 내용을 발표할 뿐 아니라 지난 내 삶과 노력도 발표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통과는 했으나, 교수님들의 날카로운 칼날에 4년간의 노력은 이리저리 찢겨 너덜너덜해졌습니다. 마치 결과가 없었던 것처럼. 모든 학위를 위한 노력에 고하가 어디 있나. 싶지만 결과를 받아들이는 교수님의 입장은 다른 가봅니다.. 사람..

새벽에 일어나 생각난 것들.

어머니 복 어머니께서 교회에 여성교회 총무를 맡으셨다고 한다. 총무라는 직책은 그 다음 해에는 자연히 회장으로 이어지는 자리이다. 큰 교회에서는 회장이라는 말만 좋을 뿐 얻는 것보다 희생이 따르는 자리이다. 그렇다고 일반 직장처럼 월급을 받는 자리도 아니다. 어머니께 처음 총무를 맡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을 때, 얼굴에서 스쳐지나가는 근심을 보았다. 우리 집 형편을 아는데 차라리 그냥 안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저 '괜찮다. 내년에는 다른 일은 못하겠다'하셨다. 짧게만 말씀하셨다. 문득 내 자녀를 보며 어머니를 생각하니 왜 총무가 되었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그것은 자식들이 잘 될길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혹여나 교회에서 봉사와 헌신을 통해 복을 받는다면, 기꺼이 그것을 자..

좀 안아줄걸.

안아주지 나에겐 무뚝뚝한 아버지가 계신다. 단둘이 방안에 있으면 처음 만난 사람보다 어색한 그런 아버지다. 스윽- 아버지를 보면 궁금하다. 아버지의 체온은 따듯하긴 할까. 저 두꺼운 손은 어떤 느낌일까. 아버지 볼과 내 볼이 비볐던 적이 있을까. 내 기억에 없는 일이라도 아버지 기억에라도 있다면...좋겠다. 나는 늘 그분에 누워있는 뒷모습만 보며 자랐다. 아버지는 누워 티비를 보시고 나는 아버지를 등 뒤를 바라보는 식이다. 아버지가 내가 태어나서 날 한번이나 안아줬을까. 알 수 없지만 묻지도 않았지만 우리 아버지는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상상이 안 된다. 그래도 자식을 염려하는 구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단 한번은 있었다. 어릴 적형이 화장실에서 바퀴벌레를 보고 놀라 "빽-"하고 소리 질렀다. 그때 티비를 ..

아이를 키운다는 것. 두번째 인생의 시작.

​​ 누가 한 두 살 때를 기억하겠는가. 아기를 키운다는 것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유아기 시절,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시절을 어른이 다 되서야 다시 경험하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를 키우며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간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했던 부모님의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되풀이 한다. 부모님은 연약했다. 아기가 울거나 아파할 때 어찌할 바를 모르던 풋내기였다. 지금처럼 든든하고 강해지 신건, 자식인 내가 그들을 고통스럽게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풋내기였던 부모님이 우는 나를 안고 달래며 당신들의 부모님을 생각했듯이 나 또한 우는 아기를 안으며 우리 부모님을 생각한다. '​어떻게 키우셨을까' 그리고 '​어떻게 키울까' 두 번째 시작된 인생에서 나는 아이의 길잡이다. 나의 삶이 아닌 부..

자자

따르릉-따르릉- 알람시계가 시끄럽게 울린다. 오른쪽 눈을 가늘게 뜨고 창가를 바라봤다. 창가에서부터 들어오는 햇빛이 눈부시다. 얼굴을 한껏 찡그렸다. 반원을 그리며 날아간 손으로 울어대는 알람시계의 머리를 툭 쳤다. 정적이 흘렀다. 이불을 쥔 손을 끌어당겼다. 은진이는 이불을 머리까지 덮었다. 그렇게. 다시 잠들었다. 따르릉-따르릉 - 핸드폰으로 맞춘 알람이 화려한 불빛과 함께 울었다. 죽어있던 이불 속에서 솟아 나온 손은 핸드폰 위치를 정확히 짚었고, 손가락으로 정확히 '중지'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침대 한구석으로 던졌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촤악- 은진이는 덮던 이불을 옆으로 쓱 밀었다. 침대 밑으로 흘렀다. 침대에 드러난 그녀의 모습은 침대와 하나가 된 물아일체의 모습이었다. 잠옷은 돌돌 말려 ..

골짜기의 밤

그날은 차가운 날이었다. 고된 행군은 끝났고, 쉬는 밤이 찾아왔다. 매우 피곤했다. 골짜기 샘에서부터 시작된 바람은 돌고 돌아, 옆 줄기와 만나고 휘어져서 거대한 홍수처럼 주둔지를 덮쳤다. 모든 부대원들은 추위와 싸우며 흐트러짐 없이 잠을 지켰다. 하얀 눈꽃이 야영텐트를 조금씩 덮어오고 있을 때, 형준이는 혼자 조용히 일어나 있었다. 24인용 야영 텐트 안에는 난로 옆에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조심히 의자에 앉은 형준이는 난로로 얼굴을 내밀었지만 난로의 온기는 이미 눈꽃으로 덮인 지 오래이다. 형준이에겐 마지막 혹한기다. 하지만 전역에 대한 기대감보단 걱정이 앞섰다. 입대하기 전 아버지의 사업은 큰 위기를 맞았지만 아버지는 "괜찮다" 하셨고, 어머니의 기침은 계속되었다. 당장 복학은 꿈도 못 꿨다. ..

제주도 몽

힘들다. 지친다. 의욕도 없다.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눈꺼풀은 무겁다. 좀만 더 눕자. 눕자.. 눕자... 제주도로 떠났다. 도착한 제주도는 초 저녁 구름이 하늘 덮어 을씨년스러운 날씨에, 제주도 특유의 강한 바람이 불어 내 머리는 흐트러트린다. 네모난 서류 가방 하나 들고 알 곳 없는 곳을 걷다 보니, 작은 상점 서너 개가 바다를 마주하는 곳으로 도착했다. 한적한 좁은 도로에는 바람만이 달리 있었고 상점의 불은 꺼져 있었다. 좀 더 가까이 가서 보자. 작은 시골 슈퍼집 같아 보였다. 윤기가 나는 나무들이 양 끝기둥으로 서있고, 깔끔하게 시멘트로 마감이 되어있었다.깔끔하면서도 세련되게 치장되어 있었다. 그중에 가운데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정사각형의 나무로 틀을 만든 간판이었는데, 가운데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