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긴했는데_기억이안나

철학?! 비트겐슈타인만 알면 된다.

DiKiCHi 2022. 1. 10. 15:14

철학이 뭔가요?

이과생으로 태어나서 '사는 것이 무엇인지' '행복이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도덕이 무엇인지' "내가 알게 뭐냐!" 하며 살아온 저에게 철학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 외계인이 라면에 밥 말아 먹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철학이 별거입니까? 제가 도덕을 정의 해주겠습니다. 도덕은 사람들 사이의 약속. 인생은 말이죠. 인생은 소명입니다. 행복은 만족입니다. 철학은 삶의 이야기. 이로써 모든 철학의 문제는 다 해결된 건가요?

이렇게 철학이 단순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복잡한 철학이야기에 매력적인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바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입니다.

 

 

비트겐슈타인
이름도 철학적이야!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물론 저는 얇-게 생선포를 뜨듯이, 간략하게 이야기 할 것입니다.

저는 이과생이거든요. 철학은 하나도 몰라요. 그래서 쉽게 할 겁니다.

 

복잡한 언어를 사용하는 기존 철학보다 조금은 더 이해하기 편한것 같습니다. 물론, 다른 철학은 모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굉장히 매력적입니다. 또한 기존의 철학을 모두까기하는 비트겐슈타인의 천재성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비트겐슈타인을 알아야하는 가장 큰이유가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알면 더이상 철학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 철학을 여러분에게 말한다면, "그건 실제 대상이 없어서 말하는 건 무의미해"라고 말하면 됩니다.

무슨 주제를 가져오든 "무의미해"라고 말하면 됩니다.

모든 철학은 끝났습니다. 

서장훈 그게 무슨의미가 있니
비트겐슈타인 마스터 서장훈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삶.

 

1.출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강사업을 하는 아버지 슬하에 5남 3녀중 막내였습니다. 이 집안은 거의 철강왕 카네기 급의 부유함을 자랑했는데요. 그래서인지 그 당시의 매우 유명한 예술가를 많이 후원했습니다.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이 집에서 연주회를 하고, 키스로 유명한 구스타브 클림트가 자녀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려주기도 했죠. 구스타브 클림트가 초상화를 그려주는 집안이라...대단하죠?

이런 집안에서 자라서 인지 다른 형제들은 음악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지만 루트비히 만큼은 재능이 없었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집안에도 가슴아픈 상처가 있습니다. 예술적인 재능에 반해 그들의 아버지는 공학이나 사업을 하길 바랬습니다. 이러한 마찰을 못이기고 세 명의 형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죠. 이런 이유로 아버지의 강압이 줄어들면서 루트비히는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진학한 기술학교에는 또다른 역사적인 인물이 있었습니다. 나이는 같지만 학년이 다른 히틀러입니다. 물론 친구는 아니었다고하니 다행입니다. 

히틀러와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과 히틀러

 

비트겐슈타인은 베를린에선 기술전문대학에 진학하고, 졸업한 후 영국 맨체스터 대학으로 가서 당시 최첨단 공학 분야인 항공 공학을 공부했습니다. 1911년에는 자신이 설계한 프로펠러의 추진 장치에 대한 특허 출원도 했다니 공학 분야에도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학자로는 마지막이었습니다. 

 

2.케임브리지로

수학 문제를 논의 하는 모임에서 <수학의 원리들> 접하면서 수학 철학에 관심을 갖게된 비트겐슈타인은 프레게를 찾아갔고, 케임브리지 대학의 러셀에게 추천해주면서 20세기 철학사에서 가장 운명적인 만남이 이집니다. 

이 사건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연대별 주요사에 이렇게 표현 됩니다.

 

  • 1911년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러셀과 공부하기 위해 빈에서 케임브리지에 오다. 무어 G.E.Moore와 더불어 이 두 사람의 저작은 20세기 전반기 동안 철학을 변환시켰고, 케임브리지를 영어 사용권에서 철학 연구의 가장 중요한 중심지로 만들었다.

 

굉장하죠!.
 
러셀을 만난 비트겐슈타인은 한달동안 강의실과 연구실을 쫓아다니면서 질문을 퍼부으며 토론을 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철학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러셀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런 비트겐슈타인게 러셀은 방학동안 글 한편을 써오라고 합니다. 이 글에서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의 천재성을 발견하게 되죠.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에게 반하게 되고 헌신적으로 돕습니다. 논리교육을 받은적 없는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저명한 논리학자인 존슨 W.E. Johnson에게 연결해주지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존슨이 자신에게 가르쳐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비트겐슈타인이 존슨을 가르치려고 했다고 합니다.
시건방의 정점을 찍는 일화는 한두개가 아닙니다. 러셀은 발표하기 위해 쓰던 글을 비트겐슈타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러셀의 글을 보고 신랄하게 비판을 했습니다. 제자가 스승을... 말이죠. 이런 비판으로 인해 러셀은 원고의 출판을 포기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그것이 전부 틀렸으며, 그 이론이 갖고 있는 난점을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가 이미 내 관점을 고려해보았지만 그것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 했다는 것이지요. 나는 비트겐슈타인이 옳으며 내가 보지 못하는 무엇인가를 보았을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틀린 내용을 계속 쓴다면, 비트겐슈타인은 나를 정직하지 못한 사기꾼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아, 이제 젊은 세대가 문을 두드리고 있군요.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비트겐슈타인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까 봅니다.
 
스승들을 까는 비트겐슈타인도 대단하고, 그런 비판을 수용하는 러셀도 훌륭한 것 같습니다.
2년만에 득도한 비트겐슈타인은 1913년 노르웨이 오지에 오두막을 짓고 칩거하였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스승 중 한명인 철학자 무어를 초대해서 자신이 그동안 연구한 논리학을 받아 적게 합니다. 그리고 그 글로 학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해달라고 합니다. 하지만 받아 적은 글은 논문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죠. 거절당한 비트겐슈타인은 죄없는 무어를 비난하며 절교를 선언해버립니다.
나름 스승인데...불쌍하죠.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반발당시 비트겐슈타인은 죽음에 가까이 있고 싶어해던건지 가장 치열한 전쟁터로 자원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병사에서 장교로 진급했을 뿐아니라 용기있는 행동으로 훈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 생사의 갈림길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러셀과 논의했던 철학적인 생각들을 발전시켜 적었습니다. 또한 10개월간의 포로생활을 하면서 <논리철학논고>로 알려진 책을 완성했지요.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를 마지막으로 철학을 끝내려고 했습니다. 이유가 놀라운데요. 
서문에서 그 이유를 밝힙니다. 자신이 철학의 모든 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저작이 완전무결하다고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이 철학을 끝내버렸다. 이제 철학으로는 더 이상 할게 없으니 난 떠난다는 것 입니다.
스승을 깐 비트겐슈타인은 이제 모든 철학까지 다 까버린 것입니다. 각고의 노력으로 세상에 나온 <논고>는 이후에 전설이 됩니다.
 
해탈하고 철학을 떠난 비트겐슈타인은 초등학교 교사로, 건축가로 생활하며 약 15년정도 철학을 떠나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 놓은 <논고>는 혼자 비트겐슈타인을 전설로 만들어 가고 있었죠.

 

3.다시 케임브리지로

1929년 1월 비트겐슈타인이 다시 케임브리지로 입성합니다. 옛스승 무어와도 만나고 케인스(제가 아는 그 유명한 경제학자 맞나요?), 램지와 급속히 친해집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교수의 신분이었다면 비트겐슈타인은.. 학생신분으로 케임브리지에 돌아온겁니다.

이미 비트겐슈타인은 전설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케임브리지에서 비트겐슈타인에게 그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논고>를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무어, 러셀이 심사위원이 되고 26세의 수학교수 램지가 지도교수가 되어 비트겐슈타인의 박사학위 심사가 이뤄집니다.

박사학위를 받고 바로 강의를 시작하는데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비트겐슈타인은 무서운 선생님이었다고 합니다. 사실은 괴짜인 선생님이었습니다. 항상 오랫동안 심사숙고하면서 강의를 짰는데 때로는 오랬동안 침묵했고, 때로는 자신의 멍청함을 질책했으며, 때로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탈진하곤했습니다. 또한 제자들을 철학자의 길로부터 멀어지게도 했습니다.

 

4.철학교수

1937년 학교 동문이었던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자 비트겐슈타인은 영국으로 귀화하게 됩니다. 1939년 무어가 철학교수직을 퇴임하자 비트겐슈타인은 그 자리를 이어받지요.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다시 영국 병원에 자원봉사자로 나섭니다. 1944년 다시 학교로 복귀하지만 3년 후 연구와 집필을 위해 교수직을 사퇴합니다. 1930년대 중반부터 써온 원고를 묶어 책으로 출판하는데 그의 대표작인 <철학적 탐구>입니다.

소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했기 때문에 그의 사상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받아 적은 노트들이 청색표지와 갈색 표지로 제본이 되었는데 이것은 옥스퍼드 대학의 철학자들 사이에서 읽힙니다. 이것이 <청색책 갈색책>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기 바뻐서 누군가가 대신해서 적어주기를 바란것 같습니다. 머리속에 내용들이 정리되어 있다는게 신기하네요.

 

5.멋진 삶

교수직을 그만둔 비트겐슈타인은 아일랜드의 한적한 해변가 마을에 칩거했습니다. 1949년에는 제자인 맬컴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맬컴이 가르치고 있던 코넬 대학에서 몇몇 철학자들과 토론 모임을 가지고 했습니다. 맬컴의 스승이었던 바우스마와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는데, 명망있는 철학자였지만 비트겐슈타인과 이야기할때는 언제나 겸손하게 배우는 입장을 취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매력에 빠졌던 바우스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언자는 어떤 모습일까? 비트겐슈타인은 내가 아는 가장 예언자에 가까운 사람이다. 그는 탑과 같이 높이 서서 어디에 소속됨없이 어느 누구에도 기대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나를 해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들 두려워한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그의 심판을 두려워한다. 나 역시 비트겐슈타인을 두려워했고, 그 앞에서는 책임감을 느꼈다. 그가 멀리 떠나면 나는 편안함을 느꼈다.

미국에서 제자 맬컴과 지내는 동안 비트겐슈타인은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는 집에서 생의 마지막 몇 주를 보내며 멋진 삶을 살았다고 사람들에게 전해달라고 말을 하고 세상을 떠난 것은 1951년 4월 29일이었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철학사에서 매우 드문 독특성과 특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체계적인 철학교육을 받지 않은 비트겐슈타인은 다른 철학자의 사색을 토대로 철학을 하기보다는 스스로의 문제의식과 고민을 바탕으로 새로운 철학의 아이디어를 생산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크게 전기 비트겐슈타인과 후기 비트겐슈타인으로 나뉩니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논리철학논고>로 대표되며, '그림이론'이 등장하지요.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탐구>로 좀 더 발전하며 '그림이론'에 비견되는 '언어게임이론'이 등장합니다. 

지금부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을 이 두가지로 여러가지 내용이 있지만 핵심적인 내용만 설명해보겠습니다.

 

<논리철학논고>

○논리철학논고의 문제의식

전쟁 기간동안 완성한 <논리철학논고>는 천재적인 작품입니다. 100페이지 안되는 책이지만 우리같은 사람은 이해 할 수 없습니다. 보면 철학이 더욱 싫어질지도 모릅니다. <논리철학논고>는 철학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철학의 문제는 우리의 언어의 논리를 오해한 데서 생긴다는 것입니다. <논리철학논고>는 다음처럼 요약할 수 있습니다.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논리철학논고>'사고의 한계' 또는 '사고의 표현의 한계'를 그리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서문에서 이런 말을 하죠.

여기에 적힌 사고의 진리성에 대해서는 공격 불가능하며 완결적이다. 따라서 나는 모든 본질적인 점들에 있어서 문제의 최종적 해결점을 찾았다고 믿는다.

비트겐슈타인의 문제의식은 명확했습니다. 소크라테스 이래 철학에서 제기된 대부분의 문제들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논리를 잘못 이해하는데서 왔다는 것입니다. 철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언어의 논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말하여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것은 언어의 논리가 가진 한계를 통해 두가지를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대부분 철학의 문장들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하려는 시도의 결과물이라고 본 것입니다. 철학자들의 주장들은 한결같이 그러한 주자의 합법성도 없이 언어의 논리를 남용한 결과 무의미한 문장들을 만들어냈다고 봤습니다. 

칸트는 인간의 사고능력에 대해 비판적으로 본 반면 비트겐슈타인은 사고의 표현인 언어능력에 주목했습니다.

 

  • 문제는 사람이 생각하는 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한 바를 표현하는 것에 있다

 

그는 사고할 수 있는것과 사고 할 수 없는 것의 한계를 명확하게 설정해야한다고 했습니다. 

사고할 수 있는 것 ▷▷말해질 수 있는 것

사고 할 수 없는 것 ▷▷ 말로 담을 수 없는 것

을 의미합니다.

 

○언어와 세계

언어는 세계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세계를 반영하는 기능을 가집니다. 그 이유는 언어와 세계의 구조가 서로 대응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부엌에는 밥솥이 있다"는 실재 대상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맞는 말인지 틀린지 알수 있죠. 우리가 부엌으로 나가보면 됩니다. 하지만 "선은 무엇인가"라고 했을때 '선'과 대응되는 실제 대상은 무엇인가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서 침묵해야합니다. 또한 아무리 논쟁해서 선에대해 정의했다고해서 그것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그림이론]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명제의 그림이론

그리고 재미있는 사실은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의 이론 또한 철학이기 실제가 없습니다. 침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트겐슈타인은 침묵을 깨고 있죠. 그래서 핑계를 하나 대는데요. 자신의 글을 밟고 올라간 뒤 버려야 하는 사다리라고 읽고 버리라고 이야기합니다. 양심에 찔려서 그런지 <논리철학논고>의 글은 매우 심플하게 적혀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면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명제는 문장이 담고 있는 내용을 의미합니다. "강남은 강북보다 남쪽에 있다." 강북은 강남보다 북쪽에  있다. 두 문장은 다른 문장이지만 담고 있는 동일한 내용을 명제라고 합니다. 하나의 사실에 하나의 명제만 대응합니다. 그림이론은 정물화처럼 실제대상을 화가가 캔버스에 그리듯이, 사실을 명제, 언어로 그리는 것입니다. 명제는 사실의 재현 혹은 표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재현이 가능하기 위해 명제와 사실은 서로 재현의 형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논리적 형식이라고 부릅니다. 

그림이론의 요체는 명제는 사실의 모델로서 사실을 대신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명제와 사실이 논리적 형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참과 거짓

인간은 오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명제가 사실을 정확하게 재현하지 못할 가능성은 늘 있습니다. 명제가 사실의 정확한 그림인지 여부를 판단할 기준이 필요합니다. 명제는 사실과 일치(부합), 또는 일치(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두가지 있을 수 있습니다. 일치하는 것을 , 불일치할때는 거짓이라고 합니다.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알기 위해서는 명제를 사실과 비교 분석해야 합니다. 이렇게 명제는 참 또는 거짓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이때 명제는 의미(sense)를 가진다고 합니다.

'태양은 지구를 돈다'의 명제는 틀렸지만 의미는 있습니다. 그러나 '무색의 초록 관념들이 맹렬하게 잠잔다'는 하나의 문장은 되지만 명제는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문장은 참과 거짓을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명제가 참 또는 거짓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실의 그림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에서 상당수는 그 말에 대응하는 사실을 찾을 수 없습니다.  '무색의 초록 관념들이 맹렬하게 잠잔다'같은 문장은 무의미(nonsense)해지는 이유는 그것이 어떤 사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잇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명제가 될 수 없는 문장들은 '무의미한 문장'일 뿐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이 다루는 대부분의 문장들이 그런 종류라고 했습니다. 또한 윤리학의 문장들도 무의미하고 했습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나쁘다'라는 문장은 가치판단을 포함하고 있는데 누군가 거짓말을 했다고 해서 그 문장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기때문입니다.

철학적 문제들에 관해 씌어진 대부분의 명제들과 질문들은 거짓은 아니지만 무의미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종류의 질문들에 대해서 전혀 대답할 수 없으며, 그저 그것들의 무의미성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철학이나 윤리학에서 다루는 물음들이 언어의 논리를 잘못 이해한 데서 발생한 혼란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삶과 가치의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철학, 윤리학의 문제가 존재가능하지만 아직은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뿐이라고 했습니다.

 

위에서 말한 이유들로 비트겐슈타인을 과학을 좋아한것 같습니다. 유의미한 명제들을 다루는 학문으로 자연과학이 있습니다. 과학은 사실을 다루면서 사실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도달하려는 것이죠.

'태양은 지구 주위를 돈다'는 코페니쿠스 전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그리고 과학이라고 생가했죠. 하지만 갈릴레오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라는 문장이 참임을 증명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코페니쿠스 이전, 이후나 지구와 태양의 관계의 사실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참인줄 알았던 명제가 거짓임을 알았을 뿐입니다. 과학 명제가 거짓을 말해도 나중에 우리의 경험으로 참/거짓을 가려낼 수 있는 모든 문장은 유의미합니다.

 

유의미한 문장 영역 ▷▷ 과학

무의마한 문장 영역 ▷▷ 철학

 

○무의미의 의미

<논고> 책에속에도 많은 논란거리가 있습니다. 마지막 문장으로 책을 맺는데요.

 

  •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문자 그대로 이해하자면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논고>를 통해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말한 것이 되므로 전부 무의미한 난센스이며, 침묵해야하는 것에 대해서 말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서문에서는 '여기에 적힌 사고의 진리성에 대해서는 공격 불가능하며 완결적이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많은 해석가들은 논고를 무의미한 저작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일단 딛고 올라간 후에는 던져버려야 할' 것 인거죠. 무의미하지만 언어관을 전달하는 데 필요한 명제들이며 (세계를 올바로 보기 위해 딛고 올라갈때까지 필요한 사다리), 일단 그 명제들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의 언어관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로부터 나오는 필연적 귀결은 <논고>의 문장들을 난센스로 이해하게(사다리를 던져버리는 것)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해석에서는 위의 문장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이 문장 또한 무의미한 문장으로 만들기때문에 위의 문제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전환기의 비트겐슈타인

 

<논리적 형식에 관한 몇 가지 소견>

비트겐슈타인이 철학을 다시 시작하면서 씨름했던 문제는 색채 배제의 문제입니다. <논고>에서 색채의 문제를 다루면서 비트겐슈타인은 시야에서 두 색채가 동시에 한 장소에 있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일인데, 그 이유는 색책의 논리적 구조가 그런 상황을 배제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램지는 "이것은 빨갛다" 더 단순한 요소인 빨강의 농도의 차이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단순한 요소들의 양적 차이를 반영하는 요소문장들로 분석되기 때문에 이것은 결코 해결책에 가까이 갈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의 주장을 일부 포기하고 언어와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진정한 논리적 고리는 진리함수적 논리로만 국한되지 않으며 그 이상의 다양성을 포함한다고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하나의 명제가 사실의 그림이 됨으로써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생각 대신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해갑니다. 

 

  • 실재를 재는 자로 쓰이는 것은 명제가 아니라 명제들의 체계이다

 

어떤 물건의 길이를 잴때 우리는 자를 대고 눈금을 봅니다. 만일 10cm라면 우리는 0부터 10cm 눈금을 모두 읽는 겁니다. 그 물건이 10cm인것을 알았을 뿐아니라 9cm, 11cm가 아니라는 것까지 동시에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파란색을 볼때, 동시에 그것이 빨강도 아니고 초록도 아니라는 것을 동시 알게되는거죠. 이것이 하나의 점이 도시에 두개의 색을 가질 수 없는 이유라고 합니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철학적 탐구>

○언어게임의 아이디어

후기 비트겐슈타인을 대표하는 말은 언어게임이론(language-game theory) 입니다. 그림이론도 마찬가지지만 언어게임이론이라는 명칭은 비트겐슈타인 스스로가 쓴적은 없습니다. 그는 철학이론이 아닌 활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반성에 대한 갈망'이라는 우리의 습성을 언급하면서 언어게임에 대한 설명을 시작합니다. 그는 일반성에 대한 갈망이 몇 가지 철학적 혼란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많은 철학자들이 일반성에 대한 갈망에 굴복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과학적 방법의 유혹이 있다고 하는데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을 가능한 최소의 자연법칙으로 환원함으로써 설명하려는 과학이 방법이 철학에 적용될때 철학자들은 완전한 어둠속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철학이라는 것이 어떤 결과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중요한 것이지 결과 자체가 중요한것이 아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일반성에 대한 갈망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합니다. 언어게임을 통해 에 대한 이해에 도달 할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정의를 내리거나 상세한 설명을 통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언어게임들 사이에 발견되는 유사성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원초적이고 단순한 언어들도 언어게임임에 틀립없다고 봅니다. 의사소통 체계를 이루는 한 요인으로 언어가 단지 정적인 상징체계 (그림)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뗄 수 없는 역동적인 체계이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죠.

<탐구>에서 말하는 언어게임은 언어행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단순한 형태에서 복잡한 형태에 이르는 다양한 언어들, 어린아이가 학습을 통하여 모국어를 배우는 것. 인간의 의사소통 행위 전체를 언어게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어떤 의미로 사용하든 동적인 개념인 규칙 지배적 활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상황, 언어가 사용되는 맥락이 중요합니다. 

어는 역동적인 체계로서 숨바꼭질이나 축구경기와 같이 언어라는 게임에 직접 참여할때 언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의미와 사용

대상은 이름을 통해 지칭된다. 만일 '줄리엣'이라는 이름을 통해 한 사람을 의미할 수 있는데 이때 줄리엣이라는 사람은 '줄리엣'이라는 이름의 담지자이다. 만일 줄리엣이 죽어서 그 대상이 없다면 줄리엣의 의미도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줄리엣이라는 이름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탐구>에서는 이름의 담지자와 이름의 의미를 같은 것으로 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전설 속에 엑스칼리버를 이야길 할때 우리는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것이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어게임에 참여하여 각각의 단어가 대응하는 대상을 만들어 냅니다. 만일 엑스칼리버를 모르는 사람, 우리의 언어게임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엑스칼리버가 뭔지 전혀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름관계가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플라톤에서 전기 비트겐슈타인까지 서양철학의 일관된 하나의 흐름에 대한 비판인 것입니다. 서양철학은 무엇인가 본질적인 것에 대한 추구, 또는 일반성에 대한 갈망을 따라 발전해왔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2000년 이상 서양철학의 흐름을 지배해온 플라톤적 이상에 대한 정면 도전입니다.

 

  • 철학자들이 하나의 단어 - '지식', '존재', '대상', '나', '명제', '이름' - 를 사용하면서 대상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시도할때, 그들은 늘 자신들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한다. 그 단어는 실제로 그것의 고향인 언어게임이 사용되는 방식으로 실제로도 사용되는가? <탐구 116절> 

 

비트겐슈타인은 '존재가 무엇인지', '선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하나의 정답은 결코 없으며, 그에 대한 대답을 시도하기보다 그러한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입니다. '존재란 무엇인가'를 묻지말고, '존재'라는 단어가 어떤 문맥에서 어떻게 사용되는가 어떤 언어게임에서 사용되는가에 주목해야하는 것입니다.

결국 한 단어의 의미가 어디서 오느냐에 대한 질문에 우리는 그저 그 단어가 사용되는 언어게임의 맥락에서 왔다고 말하면 충분하다. 다른 어떤 방식으로 설명될 수 없고 그저 언어게임의 실행에 참여함으로써 가장 잘 설명될 수 있다는 말은 곧 언어게임은 그 외부에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적 경험과 사적 언어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내적인 대상이란 곧 내적 감각을 말합니다. "나는 배가 고프다"라고 말하면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간접적으로 알뿐 직접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내적 감각은 본질적으로 사적(private)인 것입니다.

  • 한 사람이 그의 내적 경험들 - 감정, 기분 등-을 그가 사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적거나 음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를 상상할 수 있을까? - 우리는 우리의 일상언어에서 그렇게 할 수 있지않은가? - 하지만 그것은 내가 뜻하는 바가 아니다. 이 언어의 개별적인 단어들은 말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알려질 수 있는 것들, 즉 그의 직접적인 사적 감각들을 지칭한다. 그래다.서 다른 사람은 그 언어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언어게임은 본질적으로 공적입니다. 언어게임에 참여한다는 것은 혼자만의 언어 사용을 배제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각자의 사적인 감각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감각 자체는 사적이겠지만, 그에 대한 표현은 감각어의 가르침과 배우기가 일어나는 언어게임의 공적인 틀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대단한 이성 능력의 산물인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인간의 언어 능력은 마치 새가 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과 마찬가지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삶의 형식일 뿐이라 것이다.

 

 

 

 

 

○확실성

<확실성에 관하여>

비트겐슈타인은 우리가 확실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영역에 대해서 논의하면서 그러한 영역이 삶의 형식과 관련된 것임을 강하게 이야기합니다. 너무나 확실해서 우리가 결코 의심 할 수 없는 문장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에게 손이 있다”, “세계는 존재한다”와 같은 문장입니다. 이러한 문장들은 참, 거짓의 여부를 경험적 테스트를 통해서 가려야 할 문장들입니다. 이러한 문장은 “1+2=3”과 같이 단순한 이성적 계산에 의해서 참, 거짓을 가릴 수 없습니다. 

성숙한 비트겐슈타인은 위의 예문들뿐 아니라 “지구는 궁글다”는 문장들도 확실하다고 말합니다. 그는 이러한 명제들에 대해서는 그것들이 참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의심하거나 그것들이 참이라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무의미해진다고 합니다. 이런 명제들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에게 손이 있다”는 문장을 보면, 정상적인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대화하는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자신에게 손이 있다는 것을 의심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가 묻습니다. 인간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진 삶의 형식과 그의 일부로서 실행되는 언어게임 개념을 염두에 두고 논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명제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언어게임을 실행하기 위해서 먼저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그런 종류의 명제들인 것이죠. 

비트겐슈타인은 그렇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영역을 확실성의 영역으로 봅니다. 

아는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이 가능해야 한다

의심 또한 확실성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의심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의심할 수 없는 영역을 전제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의심할 수 없는 영역이 곧 믿음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즉 의심은 믿음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언어는 단일한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언어가 아니라 다양한 문맥에서 각기 다르게 쓰이는 일상생활의 언어입니다. 과학과 다른 성격을 가진 철학이 여전히 언어의 명료화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그러한 작업이 문법적 분석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과학은 현상을 설명하려고 하는 반면, 철학은 현상의 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려는 시도입니다.


앞에서 철학은 끝났다했지만 사실은 철학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저의 철학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내가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하는 방법들을 조금씩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철학이야기를 보면 예전 유럽여행의 경험이 떠오릅니다. 한국에만 살던 제가 머나먼 유럽에 발을 내디뎠을 때,  발끝이 땅에 닿는 곳부터 먼지가 돌풍에 휘날려 사라지면서 그 속에 갖춰진 새로운 지도가 그려지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제 행동반경과 시야는 전지구적 넓어졌습니다.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해보고,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 것 대한 사색을 하면서 생각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경험을 한 것입니다. 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삶에 한정된 사건과 경험들 속에 갇혀있던 생각들, 사고의 능력을 싣고 날아가는 비행기 같습니다. 저의 생각을 지구 반대편으로, 달로, 목성으로, 안드로메다로 데려다 줍니다. 분명 같은 인간의 삶을 살지만 다양한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는 철학자들을 통해서 저는 좀더 넓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행의 즐거움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가기전에는 걱정되지만 목적지에 도착했을때 그 야릇야릇한 기분이 분명 좋습니다.

 

<공감한번꾹눌러주세요. 힘이됩니다.^^>